아산화질소와 콜드브루 합체
미세하고 부드러운 거품 만들어
식감 폭신한 ‘니트로 커피’ 유행
극저온 액체질소는 칵테일에 활용
얼음 대신 쓰면 비율 맞추기 쉬워
뭉게뭉게 흩어지는 연기도 볼거리


‘수헬리베 붕탄질산 플네나마 알규인황 염아칼칼’.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 곡조에 맞춰 염불 외듯 외우던 원소 주기율표의 일곱 번째 원소, 질소(N)가 여름 음료 시장의 한 축을 도맡았다.
교과서에 존재하는 미지의 원소라 멀게 느껴지지만, 질소는 진작부터 우리 곁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들이마시고 내뱉는 기체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이지만,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건 질소다. 과자 봉지 속에는 순도 높은 질소가 들어간다. 공기 중 산소로 인해 과자가 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냥 공기 대신 질소를 넣는 것이다. 빵빵하게 채운 덕에 과자도 덜 깨진다. 부드러운 질감의 흑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맥주에도 질소가 들어있다.
카페에도 어디에나 질소가 있다. 사실 최근 카페에 질소 열풍이 불기 전부터 있었다. “크림은 얼마나 올려 드릴까요?” 할 때의 그 휘핑 크림을 만들어내는 ‘휘핑기(사이폰)’에 사용되는 기체가 질소다. 정확히는 아산화질소(N2O)다. 선량한 카페 주인들은 아산화질소 대란을 겪고 있다. 그간 문제 없이 사용해온 아산화질소가 ‘웃음가스’ ‘해피벌룬’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사 환각제로 악용돼 철퇴를 맞을 수순에 들어간 탓이다. 본드는 물체를 붙일 때, 부탄가스는 고기를 구울 때 불을 피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악용되기 전까지는 그것들은 이로운 도구인데도 말이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소 음료의 매력
질소 음료 바람은 ‘콜드브루 커피(더치 커피ㆍ분쇄한 원두를 상온의 물 혹은 차가운 물에서 장시간 우려낸 커피)’ 유행 직후 찾아왔다. 정확하게는 콜드브루와 질소가 합체해 또 하나의 유행이 됐다. 뜨거운 물로 내린 커피에 비해 쓴맛은 덜하고 더 부드러운 것이 특징인 콜드브루. 아산화질소를 이용해 미세하고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내면 ‘나이트로 커피’ 또는 ‘니트로 커피’다.
음료 컨설턴트인 김영하 베버리지 아카데미 대표는 “아산화질소는 자체에 달게 느껴지는 특유의 맛이 있기 때문에 콜드브루 커피에 사용하기 좋은 기체”라며 “최근 질소 음료 열풍이 확산된 건 제조가 쉽고 관리도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휘핑기와 아산화질소만 있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쉽다. 간단한 교육만 거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올 여름 커피 전문점은 일제히 질소 음료를 내놓고 시장을 ‘부드럽게’ 달구고 있다. 각자 차별화를 꾀하다 보니 장기도 맛도 질감도 다르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나이트로 콜드 브루’는 자체 개발한 전용 기계에서 바리스타가 직접 추출해 준다는 점을 내세운다. 완성도 높은 풍성하고 미세한 거품이 난다. 커피 안에서 거품이 물결처럼 아래로 흘러내리는 ‘캐스케이딩’도 선명하게, 오래 지속된다. 일부 매장(105개)에서만 판매한다. 투썸플레이스의 ‘니트로 콜드브루’는 소형으로 제작된 전용 케그(맥주 등을 저장할 때 쓰는 작은 통)를 사용한다. ‘니트로 콜드브루 라테’도 선보인다. 엔제리너스커피는 ‘나이트로 콜드 브루’ 커피와 함께 질소 차인 ‘나이트로 티’를 내놓았다. 드롭탑엔 ‘니트로 콜드브루 플레인’과 ‘니트로 콜드브루 위드 밀크’가 있다.
아산화질소를 사용한 콜드브루 커피의 맛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부드러운 질감과 달달한 맛을 즐기기엔 좋다. 커피 자체의 맛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니아 사이에선 그 장점이 단점이 돼 ‘커피와 비슷하지만 커피는 아닌’ 어중간한 맛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산화질소 자체는 음료를 제대로 식히지 못하므로 시원하게 들이켜기엔 다소 미지근하다. 얼음을 넣어 식히면 얼음이 녹으면서 음료의 수분 함량이 높아져 질소가 더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도 단점이다. 휘핑기를 사용하는 일부 중소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경우 질소 거품의 질감이 부드럽지 못해 아산화질소를 사용한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아산화질소의 성질은 빙수 같은 디저트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라운지&바’에선 아산화질소를 이용해 만든 망고 ‘에스푸마(Espuma)’를 얹은 망고빙수를 선보였다. 에스푸마는 원래 거품, 무스를 뜻하는 스페인어인데, 액체의 끈끈한 성질을 이용해 액체 안에 자잘한 기포를 가두는 원리다. 망고를 그대로 갈면 수분 많고 묵직한 액체가 돼 빙수와 뒤섞이기 쉽지만, 에스푸마로 만들면 빙수 위에 듬뿍 얹어도 살포시 떠있는 듯 오래 지속된다.

무더위까지 얼리는 -196도의  액체질소
액체질소도 음료에 쓴다. 액체질소는 끓는 점이 -196도인 차가운 액체다. 영리한 호모 사피엔스는 극저온을 요리에 이용한다. 바에서 색다른 음료를 만들기도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음료를 식히는 ‘액체 얼음’으로 쓰는 것. 라운지&바는 얼음 대신 액체질소로 순도 높은 ‘클래식 드라이 마티니’를 만든다. 카트 형태의 ‘무빙 바’를 도입해 바텐더가 테이블 옆에 서서 마티니를 만들어 준다. 카트 위에서 액체질소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는 모습부터가 신나는 볼거리다.
서울 강남구 ‘앨리스 청담’의 오너 바텐더 김용주씨의 설명. “펀치 같은 대량의 칵테일을 제조할 때, 스터 칵테일(용기에 담은 채 저어서 섞는 방식의 칵테일)을 만들 때 액체질소가 유용하게 쓰인다. 얼음은 녹으며 물이 되는 양을 가늠하기 까다로운데 액체질소는 기화돼 다 날아가므로 정확한 비율로 칵테일을 완성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칵테일은 액체질소가 남아있는 상태로 마시면 위험할 수 있다. 기화되는 연기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면 액체질소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더 신기한 조리도 가능하다. 김용주씨가 시연한 액체질소를 이용한 머들링(막대로 재료를 빻는 것). 민트에 액체질소를 부어 순간적으로 얼렸다 빻아 라면의 동결 건조 건더기처럼 제 색과 향을 간직한 가루를 만든다. “민트 같은 허브는 그대로 빻으면 갈변하면서 원래 향과는 좀 다른 향을 내게 되는데, 액체질소를 사용해 얼린 뒤 빻으면 향을 완전히 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 재료 안의 수분은 얼어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온에서 빠르게 녹으면서 곧바로 갈변되고 향도 변한다. 녹기 전에 재빨리 칵테일을 만들어야 한다.
김씨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액체질소 칵테일은 분자요리 기법을 차용했다. 오렌지 주스에 증점제(잔탄, 알긴산 등 점도를 증가시키는 식품첨가물)를 혼합해 끈기를 만든 뒤 휘핑기에 넣어 아산화질소를 주입해 뽑아내면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 수 있다. 에스푸마와 원리가 같다. 그는 탄산수 위에 이를 띄운 분자 칵테일을 시연했다.
그간 음료에서 경험해보지 않았던 매우 부드러운 질감과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달달한 맛을 내는 아산화질소, 또 극저온을 이용해 조리법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액체질소는 무더운 여름 음료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여름 한 때 즐길 만한 색다른 마실 거리, 재미있는 구경 거리이기도 하다.
단, 액체질소는 매우 위험한 액체이며, -200도 가까운 온도이기에 잠시의 부주의에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김용주씨는 “액체질소는 고가의 전용 장비를 사용해 취급하고 있으며,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숙련된 직원만 사용하고 있다”며 “한 방울이라도 튈 수 있는 단계에서는 손님과 거리를 유지하고 혼합물이 안정됐을 때 가까이서 시연하는 등 매뉴얼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도 “무빙 바에선 전용 용기를 사용하고 깊은 용기를 사용해 튈 위험을 방지하며 손님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하도록 주의하고 있다”고 했다. 또 “스테인리스 소재의 전용 용기에 소분한 뒤 액체질소에서 기화된 기체의 온도는 최초에는 -40도 이하이지만 보관 중 온도는 -15도에서 -18도 사이로 높아져 위험이 적다”는 내부 안전 실험 결과도 공유했다.                                      <이해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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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라운지&바의‘클래식 드라이 마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