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품 벽에 걸기 싫다” 
  출처불명 작품 상속받은
  젊은 세대들, 조사 의뢰
  원 소유주에 돌려주기도



2차 대전 후 독일의 소장가들 중 자신들이 소유한 미술품이 나치의 약탈품일 가능성을 밝히려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도난품을 추적하고 수십년 동안 개인의 저택이나 사무실 복도에 걸린 출처 불명의 미술품들에 대해 조사해온 전문가들에겐 이 같은 개인 소장품에 접근할 기회가 허용되지 않아 그 취득 경위는 분명치 않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상태로 아예 함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모 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소장품들이 다음 세대로 상속되면서 유명 작품들을 물려받았으나 양심이 편치 않은 상당수 젊은 상속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미술품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난 도난품들을 벽에 걸고 싶지 않다 - 그게 전부다”라고 얀 필립스 렘트스마는 말한다. 그는 15년 전 담배 기업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장품들을 조사시키기 위해 연구원을 고용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340만 유로(약 360만 달러)의 국가기금을 배정, 조사를 보조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많은 소장가들에게 이 같은 조사를 받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다.
독일 분실미술품재단의 출처조사팀 단장 우베 하르트만은 “새 기금으로 자기 가족이 미술품을 어떻게 갖게 되었나를 밝히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지금까지는 독일의 박물관과 도서관 내의 약탈품 찾기에만 공공기금을 사용해 왔다.
독일 정부가 지원 범위 확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2013년 코르넬리우스 구틀리트의 미술 소장품들이 탈세혐의 수사 중 그의 뮌헨 아파트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후였다.
구틀리트의 소장품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나치의 미술중개상’으로 알려졌던 아버지 힐데브란트는 나치가 유태인들로부터 압수했거나 급하게 도피하던 유태인들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것이었다. 구틀리트 사건은 석연치 않은 개인 소장품 이슈를 표면화 시켰고 약탈 미술품 수천점이 다락방이나 지하실들에 숨겨졌을 것이란 소문을 무성케 했다.
구틀리트 소장품들을 조사한 정부팀에 의하면 5점은 약탈당했거나 협박에 못 이겨 판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약탈 의심이 되는 것도 153점이나 되었다. 구틀리트  케이스 이후 정부조사단에는 도난이나 약탈품으로 의심되는 소장품에 관한 자료가 줄줄이 보내지고 있다고 하르트만 단장은 밝혔다.
가족기업 닥터 웨트케르사는 몇 년에 걸친 조사 끝에 약 200개의 소장품 중 4개가 약탈품인 것을 밝혀냈다. 그중 하나는 벨기에 플랑드르의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의 1628년 작품인 ‘안드리안 모엔스의 초상’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 회사의 회장실로 가는 조용한 복도 벽에 걸려 있었다. 회사측은 금년 초 이 그림을 1940년 나치에 쫓겨 도피한 네델란드 미술상의 유일한 상속자인 마리 본 사헤르에게 돌려준다고 발표했다. 이 초상화는 협박에 의해 팔렸다가 나치 수중, 네델란드 정부, 런던 미술상을 두루 거친 후 1956년 당시 이 회사의 대표인 루돌프-아우구스트 웨트케르가 사들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7년 웨트케르가 사망한 후 원주인 추적을 시작한 그의 자녀들은 추적 과정을 지켜보며 회사 역사의 어두운 챕터를 대면해야 했다. 나치부대에 속해 있던 웨트케르는 나치 열성당원이었던 양아버지로부터 1944년 이 회사를 인수했다. 전쟁 후 그는 나치시대의 이 회사 기록을 옹호하면서 양아버지의 업적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조사팀은 3명 역사가들의 포괄적 연구를 통해 이 회사가 유태계 재산을 압수한 나치와의 커넥션으로 이익을 거두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 연구원을 고용해 다른 소장품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실시한 이 회사는 반 다이크의 초상화외에도 한스 토머스의 작품 ‘산속의 봄’을 유태인 원주인의 상속인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 현행법 하에선 유태인 소유주의 상속자들이 그림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는 현 소장가의 선의에 달려있다. 박물관들은 나치 약탈품으로 밝혀질 경우 원 소유주였던 유태인들의 상속자와 ‘정의롭고 공정한 해결책’에 합의하도록 요구하는 국제규정을 준수해야 하지만 개인 소장가들에겐 적용되지 않고 독일법은 현 소장가들을 보호하고 있다.
세바스티안 누바우어(31)는 할머니가 타계한 후 석연치 않은 가족사를 알게 되었다. 그는 구스타프 도레의 그림 ‘스페인 무희’를 물려받았다. 이 그림을 사랑했던 할머니는 가문의 오랜 보물이었다면서 1943년 라이프치히 폭격 때도 자신이 이 그림부터 가방에 넣어 피난했다고 늘 이야기 했었다. 그러나 할머니 사후 할머니의 아버지가 2차 대전 중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엔 파리에서 이 그림을 손에 넣게 되었다면서 라이프치히 폭격에서 집을 잃은 데 대한 보상이라고 써있었다.
“훔쳤다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라고 정치학 박사관정을 공부 중인 누바우어는 말했다. “폭격 피난 당시 가방엔 이 그림이 담겨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바우어와 가족들은 진지하게 자문했고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았다 : “우리는 이 범죄의 공모자가 되기 원하는가? 이것으로 이득을 얻기 원하는가?” “대답은 ‘노우’였다. 우리 모두는 주인에게 돌려주자는데 동의했다. 우리는 이 그림을 갖기 원치 않았다”
그는 정부 관계기관에 연락했고 ‘스페인 무희’는 2009년 주인을 찾는 온라인 사이트 lostart.de 명단에 올려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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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 거주하는 세바스티안 누바우어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석연치 않던 가족사를 밝히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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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품으로 밝혀진 안토니 반 다이크의 ‘아드리안 모엔스의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