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공항 타미널에서 셔틀버스에 올라 다운타운을 지나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선창에 당도했다. 여행가방들은 이미 객실에 도착해 있었고 2인1실의 방은 바다가 내다 보이는 오션뷰라서 멋진 선상 라이프를 즐길 것 같은 예감이 밀려든다. 멋진 풍광을 수록하고 담아내며 살아있는 글줄로 표출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눈치없이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앨라스카로 향하여 크루즈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시애틀을 출발한지 한 시간여 쯤 지나자 눈 덮인 산들의 풍광이 배경처럼 드러나기 시작하고 가까운 시야엔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정경이 정겹게 펼쳐지고 있다. 눈 덮인 산자락의 웅대한 모습으로는 보아서는 아마 캐나다 록키산맥의 줄기가 아닐까 여겨진다. 출발지 시애틀은 여름을 품고, 앨라스카 주 수도인 쥬노(Juneau)와 케치칸 (Ketchikan), 싯카(Sitka)는 때묻지 않은 야생의 자연에서 비롯된 역사와 마주하게 된 계절은 천상 봄의 한가운데에 와있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된 그레이셔 베이(Glacier Bay)국립공원의 빙하는 한겨울 속에 묶여있고 크루즈 실내는 여름이다.
그레이셔 베이의 경관을 최대한 가까이로 세세하게 안내하기 위한 배려인듯 싶다. 좁은 수로가 염려 될 만큼 전망을 주시할 수 있도록 다가선 풍광들의 감명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멀리로 보이는 눈덮인 산으로 보였던 거대한 덩이가 또렷하게 빙하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구온난화의 피해로 옛날 만큼 빙하를 만날 수 없는 비애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빙하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초 대형 예술작품 앞에 선 것 같은 섬묘함에 매료된다. 미묘한 신비스러운 빛을 뿜어내고 있다. 오랜 억겁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노라며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울림으로, 당당한듯 야릇한 묘함에 압도되고 만다.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전설의 현묘함이 세상 이치나 기예의 경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취(雅趣)를 자아내고 있음이 그윽하다. 떠도는 빙하의 조각들이 아쉬움으로 서운하긴 하지만 안타까움을 덮어주려는 듯 유려한 여운으로 드러난 빙하는 마치 성현이듯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숨은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바람이 추운줄도 모르고 한동안을 오두마니 서서 아득하니 유현한 하늘과 고아한 정취가 어우러지는 빙하의 경광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다. 수만년 아니 억겁의 신비를 간직한 웅장한 빙하 앞에서 유난히 작디 작은 모습으로 서있는 풍색의 심오함을 발견하게 된다.
망망한 수평선 너머로 해넘이가 시작되고 낮 시간과는 달리 갑판 위에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오묘한 하늘 빛의 맑고 푸르름이 마음을 자분자분 편하게 해준다. 숭고하게 지켜낸 대자연 앞이라서 그런지 순수한 자연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게된다. 초로의 모습을 곁들이고 싶은 마음이 비켜간다. 어느 때 부터였는지 카메라에 모습을 남기는 일로 부터 물러서기 시작했던 것 같다. 꾸밈없고 순수하고 온전한 자연 경관 앞에 사사로운 욕구나 모난 생각들로 누를 범하지는 않으려나 몸을 사리게 되었던 것 같다. 자연앞에 갖추어야 할 예처럼, 어줍은 행동들을 가다듬듯 세월의 기색을 보게되는 초로의 아낙 곁에 시간이 흐르듯 번지고 있다. 자정이 지나면서 은은한 여명이 서리기 시작한다. 해오름도 서두르는 것 같다. 인생에서 도드라지듯 행복한 여정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출항했던 항구로 돌아오는 선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갑판 위로 옮겨와 앨라스카 크루즈가 배설해준 잊지못할 아름다운 설연을 아쉬움으로 돌아보게 된다. 다시 떠나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라 자위하며 선상에서 만난 몇분들과 여로의 마지막 환송연을 나누었다. 바다와 원시의 숲, 현대문명과 원주민이 빚어낸 절묘한 정취를 뒤로하고 사방이 수평선으로 두르고 있는 망망대해를 가르며 유유히 운항하고 있다. 가시지 않는 남은 운치와 감동의 여운이 서려있다. 크루즈 여정의 여음이 그리 요란스럽거나 다난하지 않았던 간명한 뒷맛에 입맛을 다시게 된다. 어느새 하루하루 풍겨냈던 일상의 익숙한 내음들이 코 끝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