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첫째는,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갑니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입니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城)과도 같습니다. 셋째는 그에게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넷째는 그의 눈에 별 관심이 없는 상대입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은 전혀 내색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합니다.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합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둘째를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합니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셋째는 말합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습니다." 라고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합니다. 넷째는 말합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갑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죽음의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1) 첫째 아내는,『육체』를 비유합니다.『육체』가 곧『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2)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재물』을 의미합니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3) 셋째 아내는,『일가친척, 친구들』입니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니까요. (4) 넷째 아내는, 바로『마음』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입니다.‘어두운 땅속 밑이든, 환한 천국의 신작로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과 덕을 쌓으며 믿음으로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믿음의 모습으로 사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주제로 한국의 유명한 가수『노사연 씨』가 부른 『바램』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들어있습니다.“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입니다.”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주는 메시지와 일치하는 힐링송입니다. 오늘본문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전 4:16)『겉사람』은 변해가는 우리의『육체』입니다.『겉사람』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 수 없는『재물』입니다. 『겉사람』은 언젠가 내 곁을 떠날 『일가친척, 친구』입니다. 그러나,『속사람』은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는『마음』입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시편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1편입니다. 특별히 시1: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나무”입니다. 나무는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녹색 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우리의 마음을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채워 줍니다. 언제나 푸른 소나무처럼 그 푸른 잎사귀가 사계절 변함없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나무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나무』에 비유할까요? 그 이유는 나무의 생존은 물의 공급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물의 공급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나무입니다. 나무는 물을 먹고 자랍니다. 나무는 물을 의지하고 삽니다. 오늘 우리에게 물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물은 예수님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물이 언제나 변함없는 늘 푸른 잎사귀로 그 푸른빛을 지탱하게 해 주듯이 예수님은 언제나 변함없는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요14:6절에,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생명 곧,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물이 공급되면 나무가 언제나 푸른 잎을 유지하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언제나 늘 푸른 소망 가운데 살줄로 믿습니다. 성경에는 이 물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축복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물을 공급받은 늘 푸른 나무가 되게 하는 것처럼 언제나 『축복의 통로(instrument of God's blessing)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은 곧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축복의 통로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1) 요셉(창39:2-3, 23). 2) 여호수아(수1:8). 3) 솔로몬(대하 1:11-12). 4) 히스기야(대하 32:30). 그러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공과 세상이 말하는 성공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성공은 하나님의『상징물』이 아닙니다. 시편37:7절에 보면,“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의인은 눈앞에 보이는 성공을 잡으려 발버둥치는『성공지상주의자』가 아닙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물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물가에 심은 나무는 누구입니까? 히브리서기자는 히 13:8절에서“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말씀합니다. 언제나 물가의 심기운 늘 푸른 나무처럼 예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의 마음에 물을 공급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는 성령, 곧 하나님과 예수님의 거룩한 영이십니다.